BASEBALLPARK

지하철 문 한 귀퉁이에 기대서 있다.
퇴근 시간의 아수라장에서 운좋게 자리를
꿰어찬 승리자들의 정수리를 노려보며
작은 패배감을 곰삭인다. 그러다 긴 좌석
의 맞은 편에서 역시 몇 개의 정수리를
눈도끼로 쪼개가고 있는 이를 발견했다.

상대방도 나를 의식한다.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아닌 척 딴전을
피우며 고개를 들었다. 쳇. 적은 애초에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어찌보면 동류의
행위자로 신사협정을 맺을만도 하건만
저 도전적인 눈초리는 분명한 도발이다.

이젠 분명한 결정의 때다.
도발은 응징되어야 한다.
따르르르릉
"사당, 이 번 정차할 역은 사당입니다."

진군의 나팔소리에 뒤이어지는 돌격의
군호 소리가 전의를 북돋는다.

슬쩍 비꼈던 시선에 다시 힘을 싣고
날카롭게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쳐든다.
대뇌의 격발 명령은 빠르게 망막 신경으로
이첩된다. 홍채가 활짝 열리고 안구 전체
가 전방으로 돌출되며 뇌격같은 안광이
맞은 편으로 쏘아져 나간다. 이제 작동은
멈출 수 없다.

쏴아아아~ 두 더 퐈이아......?

적이 없다.
맞은 편 참호가 비었다. 빠르게 객차 안을
스캐닝 했지만 어느 곳에도 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혼란....

띠리리리리~
"열차문 닫겠습니다. "

전황의 변화를 알리는 뿔고동 소리.
퍼득 깨어난 나는 창밖을 살핀다.
몸을 기댄 문 바로 옆 창문으로 익숙한
얼굴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입꼬리에
슬며시 말리는 웃음.

덜컹! 열차가 출발하고 그는 멀어지는
거리만큼 어둠에 묻혀간다.

"아 쓰...."

뒤에 남은 건 패배를 자인하는 나의
중얼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