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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 전녀총의 이여성회장님께 드리는 공개서한

작성일
12-02-08 23:42
글쓴이
[말리꽃] 자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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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소설집 제망매 中



전녀총의 이여성 회장님께 드리는 공개 서한

-고 종석



이여성 회장님께


한번도 뵌 적이 없는 회장님께 불쑥 이런 공개 편지를 올리게 된 것에 대해 미리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기까지 몇 가지 이유로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는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망설임의 가장 커다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편지에서 드리고자 하는 말씀이 제 생각엔 아무래도 회장님과 회장님 주변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히기 십상일 터인데, 혹시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돼서 이제 그럭저럭 봉합돼가고 있는 어떤 사회적 쟁점의 상처가 다시 덧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실은 혹시라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시끄럽게 돼 제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거나,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더구나 이제 전직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중년의 월급장이로서, 생업의 안정이라는 것은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결정이라도 말입니다- 늘상 일차적 고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제게는 이 편지를 쓴다는 것이 어떤 용기를 발휘하는 일에 맞먹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아, 제가 큰 결례를 저질렀군요, 아직까지도 회장님께 제 소개를 드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저는 프리 패션이라는 의류업체의 인사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정민우라는 사람입니다. 나이는 올해 마흔여덟이고 딸자식 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 커다란 회사는 아니어서 회장님께서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프리 패션은 이태 전에 여성 사원을 모집하며 용모를 전형 기준의 하나로 삼았다가 남녀 고용 평등법 위반 혐의로 전국여성단체총연합회의 고발을 당했던 마흔네 개 회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던 오토나 베르테르 그룹같은 커다란 기업들도 그때 회장님이 이끄시는 전녀총의 고발을 받았었지요. 저희 프리패션과 똑같은 혐의로 말입니다.

전녀총의 고발 이후에 용모를 전형 기준으로 삼는 것이 성 차별인가 아닌가를 놓고 의론이 분분했던 것을 기억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기소를 앞두고 취한 다소 불투명한 태도 때문이었지요.

결국, 기업이 여성 사원만을 채용하면서 용모에 제한을 두는 것은 남녀 고용 평등법 위반이 아니라는 검찰의 해석에 따라서 저희 프리 패션을 포함한 서른여섯 개 기업체는 피소를 면했습니다.

그렇지만 회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기업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사태가 진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녀총을 포함한 사회 여러 부문의 진보적 운동 단체들이 검찰의 결정을 비판하며 남녀 고용 평등법 개정 운동에 나섰고, 그 운동이 노동부의 호응을 얻어, 결국 지난해 칠월의 임시 국회에서 개정된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여성 사원만을 채용할 때라도 직무 수행에 필요치 않은 신체적 조건을 전형 기준으로 삼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취하는 것이 그 이후로 가능하게 됐지요.

교육 운동 단체를 포함해서 이런저런 시민운동 단체가 거들기는 했지만, 지난해의 남녀 고용 평등법 개정은 일차적으로 전녀총의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난해 개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어느 일간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회장님은 겸손하게도 그 공을 한국의 모든 여성들과 그들의 벗인 남성들에게 돌리셨지만 말입니다. 사실, 전녀총의 쾌거는 회장님의 그 겸손함 때문에 더욱더 빛나 보였습니다. 개정된 법이 이전에 견주어 진보적인 것이라면, 우리의 법 문화는 두해 전보다 진보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전녀총은 모든 진보가 사회 운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전녀총과 회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 개인에게는 그러나 그 진보의 과정이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두 해 전에도 프리 패션의 인사 책임자였던 저는 사건이 터지면서 아주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전녀총이 조직한 항의 전화하기 운동, 항의 편지 보내기 운동 탓에 회사의 업무가 지장을 받았다는 것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었습니다. 일부 언론 매체의 혹독한 비판 기사 역시 아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부차적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녀총의 항의 운동이나 언론 매체의 비판이 대수롭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뒤에 해당 기업체에 대한 항의 운동과 비판적 여론이 더 거세어 진 것을 회장님도 기억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이 부차적이었다는 것은 단지 그 매가 저 혼자 맞는 매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맞는 매여서 덜 아팠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혼자 맞아야 할 매의 몫이 있었습니다. 모든 월급쟁이들이 그렇듯, 제게도 가장 껄끄러운 것은 직장 상사의 질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질책은 왜 용모를 전형 기준으로 삼아서 -사실, 저희 회사에서 여성 사원을 채용하며 용모를 전형 기준의 하나로 삼게 된 것은 주로 저의 발의와 결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는 질책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책은 왜 전형 기준을 굳이 공개했느냐는 질책이었습니다. 사실 여성 사원을 뽑을 때 용모를 전형 기준 가운데 하나로 삼은 것은 그 당시 전녀총이 고발한 마흔네 개 기업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것은 반드시 여성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면접 제도라는 것이 존속하는 한 용모에 대한 고려는 남성 지원자들에게도 적용되기 마련입니다. 단지 전녀총의 고발을 받은 기업들은 용모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은 자사의 전형 원칙을 공개한 순진한 기업들일 뿐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겪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전녀총이 일부 언론 매체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그 사건을 여성운동의 관점에서, 즉 성차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관점에 따라서 그것을 여성과 남성 사이의 싸움의 양상으로 몰아가던 그러께 여름의 얘기입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가진 술자리에서였습니다. 제 동창 하나가 제게 우스갯소리로 이러는 거에요: “너 혹시 저쪽에서 심어놓은 스파이 아니냐? 아무 소리 없이 너희들 기준에 따라 그냥 뽑으면 될 걸 왜 용모가 전형 기준이라는 걸 굳이 공개해서 일을 시끄럽게 만들었냐?” 물론 여기서 저쪽이란 여성운동 단체들이나 여성 일반을 뜻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두 해 전의 그 사건 뒤에도, 그리고 지난해의 법 개정 뒤에도, 사실 우리 사회가 진보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단지 전녀총의 운동이 법 개정이라는 열매를 맺은 뒤로는 여성의 용모가 전형 기준의 하나로 내세워지지 않고 있을 뿐이니까요. 내세워지지 않을 뿐이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제가 다른 회사 사정까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제 짐작으로는 전형기준이 음성화 되었을 뿐 용모는 여전히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근하게는 저희 프리 패션에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프리 패션에서도 그렇다는 ‘자백’에 저희 상사는 또 저를 질책할지도 모르고, 제 친구는 또 스파이 운운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제 아내는 저를 두고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남성 우월주의자라고 다시 바가지를 긁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제 아내는 전녀총의 산하단체인 여성의 깃발의 회원입니다. 그 사건 당시 아내는 밤마다 저를 훈계했습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뒤에는 그 훈계가 비아냥으로 변했습니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저는 퇴근하고도 아내의 바가지가 지겨워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아내에게 제 나름의 반론을 펴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이것은 남녀 고용 평등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안이다. 설혹 법이 개정돼 이런 관행이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로는 남녀 고용 평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안이다. 요컨대 그것은 남녀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운동 단체들이 저렇게 흥분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남녀라는 말을 빼고 고용의 평등이라고 말한다면 그것과는 관련이 있는 얘기다. 그렇지만 고용의 평등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성립되지 않는 소리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하자. 나도 불쌍한 인생이다, 당신이 그렇듯.”

아내에게는 그러나 제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늘 회장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실 이태 전에 제가 제 아내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굳이 그 일을 다시 한번 거론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더구나 회장님께 드리는 이런 공개서한 형식으로 그 일을 재론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기부금 입학제의 체택 여부를 포함해서 입학생을 뽑는 데 대학에 더 많은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는 일부 대학 재단의 주장에 대해서, 다른 여러 운동단체와 함께 전녀총도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그것이 아무래도 논리의 빈곤처럼만 보입니다. 전녀총이 내세우고 있는 평등 논리의 빈곤 말입니다. 논리의 빈곤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것을 힘의 논리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늘상 쉽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조차 때때로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당장 제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아도 그렇습니다.

몸이 튼튼해지려면 음식을 가려 먹어선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어린 저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래서 제 몸은 그리 튼튼하지 못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저는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어른이 된 지금, 제 아내도 그렇고 제 딸들도 그렇고, 저를 절대 훌륭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제 누이의 말을 저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네 살 손위의 그 누이는 그 말을 하며 열한 살 짜리 오랍동생의 지능을 못 미둬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모가 났다는 것은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입바른 소리나 눈에 선 생동을 하는 것이며, 그런 태도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는커녕 남들의 미움을 사기 십상이라는 뜻이라고 곧 그 속담을 풀어 설명해주었으니 말입니다.

제 하나뿐인 동기인 그 누이는 제게 그런 충고를 하던 열다섯살 때 벌써 세상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그녀가 제게 곧 이렇게 덧붙였으니 말입니다: “죄지은 사람이 감옥가는 줄 아니? 미움 받는 사람이 감옥 가는거야.”

밝은 눈을 지닌 누이의 말을 제가 귀담아듣지 않은 탓일 겁니다. 젊은 시절 제가, 입바른 소리 때문이었는지 눈에 선 행동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해 남짓 감옥살이를 했던 것이 말입니다. 또 지금도 제 주위에 가까운 친구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제 삶을 남루하고 고단하게 만드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벌써 쉰을 바라보는 지금, 저의 여린 마음에 조그만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에 남아 있느 좀더 커다란 상처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제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은 탓에 생긴 것입니다.

어린 시절, 집에 놀러온 동무와 함께 한 겸상에 오르지 않았던 고기반찬이 동무가 돌아간 뒤 제가 혼자 받은 간식상에 오른 것을 보았을 때, 잠시 의아해하던 제가 진상을 알고 난 뒤 울먹이며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신경질적으로 항의했을 때, 어머니는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제 치유할 수 없는 이기주의가 꼭 그것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유년의 그 사건 뒤에 저는 어쩌면 전보다 조금 더 이기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아이들은 세상이 오히려 더 보호를 하고 하느님이 오히려 더 축복을 내려주셔야 공평하지 않느냐는 제 말을 저희 아버지는 귀담아 듣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건 못난 놈들이나 하는 생각이야.” 꼭 그것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평등과 균형에 대한 제 감각은 전보다 더 둔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못난 놈이라는 데 대한 창피함은 그 뒤로 더욱더 선명해졌습니다.

지성이 당신 말대로 하나의 적극적 가치라면, 미모도 그 못지 않은 적극적 가치가 아니냐는 제 말을 여성운동을 한다는 제 아내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사실 미모가 그렇듯이 지성이라는 것도 상당 부분은 타고난 것일 뿐, 그걸 지니게 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건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미모의 효용이라는 것이 지성의 효용이라는 것 못지않다는 건 그녀 자신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제 아내가 별로 미인이랄 수는 없는 용모를 지녔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공부에 소질이 있었다는 것이 아마 그녀의 지성 우월주의를 부추겼을 겁니다. 그리고 여성운동 단체에 속해 운동을 거들다보니, 남자들이 여성을 대할 때 드러내는 이런저런 편견들에 아내가 더 민감해져 있다는 사정도 작용해을 겁니다.

아무튼 제 아내는 제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능력 있는 여자가 단지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게 당연하단 말이에요?”

제 아내는 아리따운 여자가 단지 공부를 못해서 받는 차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외모의 차이가 낳은 사회적 불평등은 참을 수 없지만, 지성의 차이가 낳은 사회적 불평등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것 때문인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여성운동이라는 것에 정나미가 떨어져버린 것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참 묘합니다. 그들은 이름난 정치가나 고명한 한자의 말들은 곧잘 믿습니다. 그리고는 감동까지 합니다. 예컨대, 뭉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고 흩어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말을 존 케네디라는 미국 대통령이 할 때 사람들은 그 말을 믿습니다. 실제로는, 뭉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고 흩어져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는데도요.

바로 그 대통령이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라고 하면, 미국 국민들만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가 그 말에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그 말은, 흩어지지 말고 뭉치라는 앞의 말과 마찬가지로, 음험한 국가주의나 집단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도요.

1983년 9월 1일에 소련 영공에서 소련 공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 007기가 미군의 첩보 임무를 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촘스키 정도 되는 학자의 입에서 나오면 사람들은 앞뒤 생각 없이 그 말을 믿어버립니다. 또는 적어도, 어쩜 정말 그럴지도 몰라, 하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드러난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데도요.

그 촘스키가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는 주장도 자유 언론의 관점에서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그 말에 대뜸 고개를 끄덕입니다. 촘스키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의 멸사봉공의 태도에 감동하기까지 합니다. 그 주장의 몰상식과 거기 담긴 무정부주의적 역사 인식의 위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도 해보지 않은 체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름 없는 사람의 말은, 비록 그 말을 한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잘 믿질 않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름 없는 누군가가 말입니다, 격추된 대한항공 007기가 미군의 첩보 임무를 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는 당장 용공 분자로 몰릴 겁니다. 또 바로 그 사람이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는 관점도 용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합시다. 그는 당장 인종주의자, 파시스트로 몰릴 게 뻔합니다. 아니, 사람들은 그를 아예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상대도 해주지 않을 겁니다.

미친 사람 얘기를 하고 보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격화되고 있던 지난 83년 5월의 얘기입니다. 모스크바 방송의 블라지미르 단체프라는 뉴스 해설자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하고 있는 전투 행위를 다섯 차례에 걸쳐 비난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반군들에게 절대로 무기를 버리지 말고 조국에 대한 소련의 침공에 맞서 끝까지 싸우라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소련 상황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지하의 반체제 언론매체라면 몰라도 소련의 공식 언론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같은 사건이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요. 다만,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지원을 받는 테러 분자들에 맞서서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함께 수행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방위라는 것만 있었을 뿐이지요.

물론 단체프는 즉시 방송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감옥으로 가지 않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그 해 12월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소련의 한 관리는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고 합니다: “그가 처벌받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환자는 처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기 전에 망설인 데는, 아까 말씀드렸듯 제 신변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부차적으로 그런 사소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가 뭐 별스럽게 대단한 얘기도 아니기는 합니다만, 저는 세상에 이름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소규모 기업의 인사부장일 뿐이고, 그러니 제 하잖은 얘기에 회장님께서 귀를 기울여주시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회장님과 가깝기는커녕 일면식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제 얘기에 잠깐만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그리 기다란 얘기도 아니니 말입니다.


사실, 제 말을 들어주십사 하는 청은 일차적으로 저 자신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회장님께서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지 않으면 제가 상처를 받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상처가 꼭 일면적인 것은 아닙니다. 상처는 자기 말을 남에게 전달할 수 없는 사람만이 입는 것이 아닙니다. 길게 보면 상처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에게도 옵니다. 제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국민학교 3학년때의 사회생활 시간에 선생님께 이 말을 처음 들은 뒤로 사람의 평등에 관한 문제는 줄곧 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왔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의 이유가 실제로 세상이 엄청나게 불평등하다는 데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평등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가 제게 정말로 모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대전제와 정민우도 사람이고 클린턴도 사람이다라는 소전제가 옳다면, 당연히 정민우와 클린턴은 평등하다라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말에 큰 저항을 느끼지 않는사람도 정민우와 클린턴이 평등하다라는 말에는 약간의 저항감을 느낄 것입니다. 막연하게, 두루뭉실하게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라고 말할 때보다, 실재하는 불평등이 좀더 구체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라서, 저는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는 말은 사람이 모두 죽는다는 말과는 차원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그러니까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가치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말로부터는 사람에 속하는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사싯을 수천만 번이라도 확인할 수 있지만(아, 불쌍한 소크라테스! 그이는 실제로 온 세상 도처의 논리학 개론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형 선고를 받았던가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말로부터는 사람에 속하는 정민우와 클린턴이 평등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는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요, 그 추론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결국 대전제가 사실의 기술이든 가치의 선언이든 그것이 논증의 절차의 합당함 여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군요), 감정적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민우와 클린턴이 평등하다는 명제에 대한 감정적 불신은 기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명제의 의미가 그리 또렷하지 않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할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평등하다는 건 뭘까요? 국민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저는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는 듯 싶은 주위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제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제게 처음 그 말을 들려주신 선생님은 그 대답을 알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제게 확인시키며 말이지요.

만일 지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적극적 가치이고 고귀한 이상이라면, 미모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적극적 가치이고 고귀한 이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꼭 예쁜 얼굴만이 아니라 보기 좋은 몸매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미모 말입니다.

그리고 회장님도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사회라는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런 가치들의 사다리들입니다. 사실 사회만이 아니지요. 그런 가치의 사다리가 없으면 어떤 시스템도 작동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평등한, 또는 평등하다고 주장되는 사회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에도 지도자는 있게 마련입니다. 최소한 그런 평등의 원리를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 또는 사람들은 있어야 할 테니까요. 모든 개체가 한 모체에서 복제되어 나온 것이 아닌 한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런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개체들의 기능과 역할은 나뉠 수밖에 없고, 그 기능과 역할 사이에는 가치부여 행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서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존재는 차이이고 모든 차이는 차별을, 곧 서열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세상 만사의 서로 다름을 안다는 것이고, 다르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구별한다는 것이며, 구별한다는 것과 차별한다는 것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슬픈 일이고, 평등주의자들에게는 특히나 슬픈 일입니다만, 다른 편으로 보면 자연의 엄연한 이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선언의 그 추상적인 평등 원칙과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인 빌 클린턴과 자연인 정민우가 평등하다는 그 위대한 선언에 동의하는 것이 정치 시장에서 그 두 사람의 가치가 같다는 데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무튼, 최소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그렇듯, 사람들도 어떤 특질들에 의해서 서로 구별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생김새와 서로 다른 재주와 서로 다른 성격과 서로 다른 분위기 같은 것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개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미모에 대한 멸시가 지적이라는 사람들에게 특히 널리 퍼져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입니다. 그것이 우려할 만한 것은 사람의 가치를 오로지 지성이라는 잣대로 재려고 하는 획일주의가 거기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획일주의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성주의자들의 이기주의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획일주의는 사람은 오직 지적 능력에 의해서만 구별될 뿐 다른 어떤 특질에 의해서도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획일주의자들의 일부는 평등주의자들이기도 한데, 그들의 평등주의는 지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만, 지적인 사람들은 더 평등하다는 것이지요.

지성의 파시즘이라고도 부를 만한 그 획일주의에는 지성이라는 것이 어떤 고결한 노력에 의해서 획득되는 데 견주어 미모라는 것은 그저 태어날 때부터 무상으로 받는 것이라는 편견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성과 미모에 같은 값을 쳐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실 미모가 그렇듯 지성이라는 것도 상당 부분은 타고난 것일 뿐, 그걸 지니게 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천재나 수재라는 말이 별 저항감 없이 사용되고 있고, 그런 비상한 지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남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의 한 간접적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다. 머리가 좋다는 것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집착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널리 퍼져있습니까? 그러니까 용모의 아름다움이 그렇듯 지적 능력이라는 것도 부모의 유전자에 의해 상당 부분 좌우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아무튼 미모든 지성이든, 그것들을 부모가 결정한다고 말하기가 껄끄럽니면 최소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 힘, 요컨대 하느님이 결정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미모가 시간에 의해 마모되듯이, 지성도 시간에 의해 마모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얼굴에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배가 나오듯이, 사람의 지적 능력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퇴합니다. 나이든 브리지트 바르도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시든 얼굴을 쓸쓸하게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한편으로 레닌이나 사르트르처럼 한 시대의 지적 흐름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백치스러운 말년 역시 슬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모와 지성의 닮은 점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의 모든 가치가 어느 정도는 그렇듯이, 미모나 지성 역시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등급을 받습니다. 알랭 들롱의 미모와 록 허드슨의 미모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다를 수 있듯이, 마리 퀴리와 로자 룩셈부르크 가운데 누가 더 지적이었느냐에 대한 판단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에 (즉 사람이 지닌 지적 능력에 따라서 개개인에게 상이한 가치를 부여해 누구를 뽑고 누구를 버리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이, 미모들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에 반대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 둘은 가치의 체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성이 미모보다 더 우월한 가치의 체계라고 말할 절대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개별적인 경우에 그 두 개의 가치 체계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적절한가의 문제는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저희 프리 패션을 포함한 일부 기업체에서 미모를 하나의 전형 기준으로 삼은 데에 대해 여성운동 단체들이 비난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라고 생각합니다. 미인 선발 대회도 아닌데 왠 용모냐는 것이겠지요.

회장님은 당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인이 아니면 컴퓨터를 다룰 수 없습니까? 키가 1백 60센티미터 이하인 여자는 보험 업무를 보기 힘듭니까?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을 넘으면 은행일을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미모나 키나 몸무게 따위를 기준으로 삼아 여성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여성을 하나의 직업인으로 보기보다 ‘직장의 꽃’ 정도로 인식해온 구습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저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은 어떤 맥락이나 상황에서 어떤 가치 제계의 효율이나 효용이 더 크냐를 판단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여성 사원을 채용하는 데 미모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여성을 채용하는 데 미모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여성을 채용할 고용주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가치를 사용할 사람만큼 그 가치의 크기를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성이나 미모 이외에도 건강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말재간이라든지, 나이라든지, 경험이라든지, 또는 단순히 어떤 분위기라든지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가치의 체계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른바 지성, 요컨대 시험 성적보다 일반적으로 더 열등한 가치 체계들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주나 관상 같은 것들까지도 지성이나 미모에 견주어 여등한 가치 체계라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엑는 사주나 관상이라는 것이 지성 이상으로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은 그런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만, 그러나 사주나 관상까지를 포함해서 제가 앞서 나열한 모든 가치들을 한 사람이 어느 정도 체현하고 있느냐 하는 데에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요소가 개입된다는 점만은 지적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패배주의적인 숙명론이라고 비난하신다면, 저는 숙명론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반박하고 싶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기부금 입학을 허용할 것이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대학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적 능력이 뒤처졌다는 한 가지 이유로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 정의라고는 좀체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지적 능력과 상관 없이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모두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은 지적 능력이 처진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평등의 원리에도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그들에게 대학의 재정을 도울 능력이 있다면 굳이 그들을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뽑는 학생의 수는 한정돼 있고 지원자는 많으니 선발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회장님은 반박하실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은 결국 사람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데에 동의하신 셈이 됩니다.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을 뽑을 것인가, 거기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하는 원칙을 정하는 것은 대학 당국이어야 합니다. 그 학생들의 교육을 맡을 주체는 바로 대학이니까요. 대학 당국이 일정 비율의 기부금 입학생을 받기로 결정했다면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기부금 입학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할 권리를 제한해서 그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가 지적으로 뒤떨어진 수험생들의 대학 입학 권리를 절대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정 비율의 학생을 기부금에 의해 받는 것이 재주가 있되 가난한 사람들의 대학 입학권을 크게 제한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재산이 아니라 그의 부모의 재산이다.라고 회장님은 반박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부를 동의했다면, 그것은 자식이 기부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그만한 투자를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을 테니까요.

그래도 재산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본질적 부분이 아니어서 지성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재산이라는 것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어서, 한 개인의 정체성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지성에 견주어 대단히 작다는 반박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성에 견주어 미모를 하찮게 값 매길 때의 논거와는 정반대의 논리를 발견합니다. 미모는 한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것이어서 지성보다 더 낮은 가치이고, 반면에 재산이라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귀속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니 지성보다 더 낮은 가치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중 잣대야말로 지성의 파시즘의 전형적인 횡포입니다. 실제로 재산이 지성보다 개인에 대한 귀속도가 낮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안정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의 재산이 순식간에 날아갈 확률이, 그가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서 뇌의 기능이 크게 저하될 확률보다 높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개인이 정체성을 이루는 데서 지성이 재산보다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 튼튼하지 못 합니다.

그러나 저는 회장님의 반박이 도닳게 될 정말 위험스러운 논리적 귀결을 아직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미인이 아니면 컴퓨터를 다룰 수 없느냐는 회장님의 반박이 정말 위험스러운 것은, 회장님이 의도하셨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철저한 반인간주의, 완벽한 기능 제일주의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것은 합리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입니다. 회장님의 그 반박에는 불합리할 정도의 합리주의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용모가 기능과 무관하기 때문에 용모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인간은 기계다라는 주장과 다름이 없습니다. 기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기능입니다. 요컨대 기계의 능력, 기계의 지능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기능 -대체로 지적 능력을 반영하는- 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고, 또 그리 평가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기계가 인간을 닮은 것은 일단 그 기능에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가장 대표적인 기능은 지능, 지성입니다. 바로 그 지성의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추월할 날은 멀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인간에게는 그 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개탄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 인간은 지성으로 대표되는 기능만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업 성적보다 용모나 분위기나 성격이나 건강이 더 중시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것이 직장에는 꽃이 필요하고, 또 실제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의 꽃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적으로 뛰어난 여자가 단지 수수한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는 데 분개하는 사람이라면, 아리따운 여자가 단지 공부를 못해서 받아야 하는 차별에 대해서도 분개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그의 인본주의, 평등주의가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외모의 불평등이 낳은 사회적 불평등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지성의 불평등이 낳은 사회적 불평등 역시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성의 차이가 낳은 불평등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성 우월주의 때문일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들이 우리 사회의 지배자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외모에 기인한 불평등이든 지성에 기인한 불평등이든 그것이 둘 다 절대적으로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존재 조건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가 옳은 것만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누구나 뜨악해하면서도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육식을 합니다.) 모든 사회적 불평등 즉 차별의 근원은 결국 자연적 불평등 즉 차이인데, 인간은 자연적으로 불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모든 인간에게는 어떤 최소한의 근원적 존엄성이 있음을 위안 삼아 늘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그런 가혹한 존재 조건을 겨우겨우 견뎌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것들의 운명 아니겠습니까?

모두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게는 딸자식이 둘 있는데, 그 가운데 큰아이는 꽤 귀염성 있게 생긴 반면에 머리가 좀 아둔합니다. 지난해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지금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럴싸한 대학에 들어갈 가망은 제가 보기에 없습니다. 그런 큰아이를 아내는 늘상 구박합니다. 제가 그 아이의 역성이라도 들라치면 그 아이에 대한 아내의 구박은 강도와 빈도가 더 커집니다.

저는 그런 구박이 단지 잔인한 짓일 뿐만 아니라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의 평소의 평등주의가 지적 능력이라는 기준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큰아이가 머리는 민첩한 반면에 생김새가 못났다면, 아내가 그 아이의 용모를 가지고 구박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 그것이 제 아내가 제 작은아이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제 언니와는 대조적으로 외모가 수수한 반면에 머리는 꽤 민첩하거든요. 그 점에서 하늘이 공평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하늘의 그 공평함은 제 아내에게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되풀이 말씀드리건데 제게는 그런 아내가 비논리적이라고만 생각됩니다. 생김새와 상관없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아내가 지능, 지성과 관계없이 인간이 평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아내가 그런 이중 기준을 대놓고 옹호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비논리가 아내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큰아이가 둔하다고 구박하는 것은 사실 작은아이가 못난이라고 구박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 있는 것입니다. 즉 큰아이의 둔함을 책망하는 것이 옳다면, 작은아이의 못남을 책망하는 것도 옳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둘 다 옳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아내에게 불공평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가치 체계 속에서 지성이라는 것이 미모보다 월등히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또 아내가 수수한 외모에 명민한 두뇌를 가진 만큼, 그것이 아내에게는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감정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비논리적인 일이 아니라면 최소한 잔인한 일이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의 못난 용모를 두고 구박하는 것이 잔인한 짓이라면. 사람의 뒤처진 지성을 두고 구박하는 것도 잔인한 짓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더 잔인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 지성의 파시즘이라고 부를 만한 어처구니없는 지성 우월주의에 감염돼 있고, 바로 그런 만큼 결핍된 지성이 감내해야 하는 박탈감은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됐든 구박을 거두어야겠지요. 저는 다만 제 아내도 그렇고 회장님도 그렇고, 미모라는 것 역시 지적 능력만큼이나 값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열린 사회,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한 가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덧대어, 인종주의의 가장 위험스러운 분파가 과학의 이름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은 인종 사이의 피부 빛깔의 차이도 아니고 골격의 차이도 아니고 기질의 차이도 아니고 풍속의 차이도 아닌, 인종들 사이의 지적 능력의 차이라는 점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에 다른 특질들이 인종 사이의 서열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최소한 지적 능력의 차이는 그 서열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그 인종주의자들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종과 지적 능력 사이의 상관도를 보여준다는 그들 나름의 각종 통계 수치들을 사람들에게 들이대며, 그들의 더러운 인종주의를 수치심 없이 내세우는 것입니다. 지성의 파시즘이란 그러므로, 기실, 파시즘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회장님께서 잘못 생각하시고 계시듯이 미모라는 것이 그렇게 하찮은 것이라면, 더구나 둔한 정신의 미모라는 것은 더더욱 하찮은 것이라면, 제 큰아이는 뭐가 되겠습니까? 사실은 미모라는 게 그리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은 지적 능력에 대한 소망 이상으로 인간의 마음속 싶은 곳에 뿌리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든 남자든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지적이라는 사람들이 그걸 굳이 부인하려고 하는 게 문제 아닐까요? 그것은 사실 일종의 위선이기도 합니다. 지성파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음험하게 내장하고 있는 위선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성이든 미모든 또 뭐든 그런 가치 체계들이 빚어내는 팔자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연민,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 대한 연민 말입니다. 만약에 인간 사회가 진보해왔다면, 그 진보의 과정이란 다름아니라 동류에 대한 그런 연민의 확산과정이 아니었을까요?


혹시 제 말이 너무 직정적이었다면 용서하십시오. 회장님과 주변 분들께 새해가 복되기를 빕니다. 

                                                 1996년 12월 2일 정민우 올림

                                                  (『문학사상』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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