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글 한번 날려묵고 다시 쓰려니 매우 힘드네요.
원래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라는 책과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같이 다루는 글을 �㎨駭쨉� 한권은 다음번으로 미뤄야 겠네요. 

이 책은 소위 "동구권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오늘날 가장 급진적인 지식이중 한명인 슬라보예 지젝과의 대담집입니다. 인디고연구소라는 청소년들을 위한 한 작은 공동체모임이 주체가 되어서 오늘날 가장 문제적인 지식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기획을 진행하는 가운데 그 첫번째 순서로 슬라보예 지젝과의 대담을 했었나보더군요. 그 첫번째 결과물이 이 책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입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공공선을 회복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혁명과도 같은 급진적 변혁의 가능성은?

왜 개혁이 아니라 혁명인가?

진정한 사유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지젝의 대답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평소 그가 피력해온 다양한 견해들이 등장합니다만 그중에서 그가 왜 '혁명'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만 다뤄보겠습니다.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대로 저속한 조작이나 부패, 권력 싸움등을 의미하는 정치가 아니라,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결정을 공동으로 내리는 것과 그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지는 삶으로서의 정치 말입니다. 그렇기에 공동선common good을 '발견'한다고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적 조화와 같은 동양적 지혜에 답이 있다고 여기는 유럽의 경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거기에 조화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와반대로, 제가 보기에 모든 조화는 부분적인 조화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를 들어 몇몇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국유화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합니다. 모든 것이 사회화되었고, 그 속에 개인은 함몰되었다고 말이지요. 한편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모두가 자신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각각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극단이기에 이 둘 사이의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즉, 사회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두개의 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생각하고 어떻게 공동선을 꿈꾸는가 등의 문제들이 이미 특정한 분야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이미 어떠한 장에 귀속된 극단이라는 것입니다.(중략)

그래서 저는 두개의 극단이 있고, 그 둘의 균형을 맞추면 된다는 식의 접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유방식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균형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요. 예를들어 몇몇 국가에는 민주주의적인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없고, 또 어떤 국가는 지나치게 민주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진정한 혁명이란 , 균형을 ��출때 그 기준자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1960년대의 성해방이전에 두개의 극단적인 입장이 있었지요. 결혼 전에는 결코 섹스를 하면 안된다는 입장과 자유와 해방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오래된 균형을 잃었고 지나치게 많은 성적 자유를 획득했다고 단순히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두개의 극단이 있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느 지점까지 도달할 수있는지를 묻는 것은 잘몬된 방식인 것이지요. 극단에 대한 고유의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혁명입니다."

이처럼 지젝이 점진적 개혁보다는 혁명적 변화를 긍정하는 이유는 흔히 점진적 개혁으로 불리우는 사고 속에 내재된 "균형"이 결국 기존의 관념에 의해 제공된 양극단에 대한 균형맞추기에 불과하며 때문에 이 기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바로 '혁명'이란 것이지요.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할 것은 혁명은 반드시 폭력적인 사회주의혁명을 의미한다라기보다는 기존의 사고틀 자체를 전복시키는 변화일반을 의미한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혁명의 구체적 모습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규정받을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19세기에맑스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체일 수있다고 보았지만 다원화된 오늘날 혁명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을 공유하는 주류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일반이라 할 수 있죠. 실제로 러시아혁명의 성공과 중국 공산당의 승리의 밑바탕에는 농민들의 강력한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현재 한국에서 그런 역할을 할수있는 사람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뿐만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혹은 실업자모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시대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지젝은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근거한 교조적인  해석을 거부합니다. 가치의 근원에는 노동만 있는 것이아니라 자연자원도 가치의 근원일수 있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추진하는 혁명이 석유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혁명을 위해 노동만을 가치의 근원이라고 볼 이유는 전혀 없게 됩니다. (지젝은 맑스가 노동만이 가치의 근원이다라고 말했다고 했지만 <고타강령비판>에서 맑스는 "자연 역시 노동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용가치의 원천"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이란 것도 결국 자연을 대상화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었죠.)

이런 관점에서보면 사민주의적인 개혁은 어디까지나 자본일반이 만들어 놓은 논리회로 내부에 포섭된 사유이게 됩니다. 사유화의 대립항으로서 국유화나 사회화를 가정하고 이것을 하나하나씩 추진해내는 것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일반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적 대립과 배제의 기제자체를 전복하는 것에 있는 것이죠. 

"진정한 사유란 무엇입니까? 사유의 일차적 단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아니라, "이것이 진정 문제상황인가?", "이것이 문제를 드러내는 올바른 방법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질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

오늘날 자본에 의해서 발생하는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들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문제자체가 올바로 제기된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자체가 왜 제기되는 지 고민하기보다는 문제의 해결에만 골몰하는 경향이 있죠. 예를들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 출산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위해 육아보조금을 지급해야하나? 등등등. 그러나 지젝이 보기에 이런 문제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한 문제기가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문제제기방식 자체를 다시 사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는 분명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일부 불치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을 치료받을 수도 있고, 돈만 있으면 과거에는 꿈도 못꾸었을 우주여행도 가능합니다. 누가 이집트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트리는것이 현실적인 가능성이라고 예측했겠습니까? 그만큼 불가능성과 가능성의 경계는 불분명하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를 흐려버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유의 방식을 재정의 하는것redefine, 그리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재사유rethink하는 것 말입니다."


그밖에도 평소 그가 여러 저작들을 통해서 이야기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북한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대담형식이고 철학이나 정신분석같은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그 덕에 난해한 내용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쉽게 읽을수있다는 이야기죠.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지젝책중에서는 가장 쉬운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에 인디고연구소에서 달은 각주도 좋습니다. 지젝과의 대담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각주에서 드러나는 것 같더군요. 한가지 단점이라면 번역이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띄더군요.)  이현우씨가 쓴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이라는 책도 비교적 쉽게 읽을수 있는 책입니다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지젝해설서지 지젝이 직접 쓰거나 말한 책은 아니죠. 이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나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