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밑에 글에도 언급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방송국에 보낸 자기소개서가 고대로 있네요.

제일 웃기고 자빠진 부분만 올려봅니다...

1. 내 가슴속 체게바라

나는 소싯적부터 체 게바라에 ‘후렌들리’했었다.

사실 체 형님 얼굴이 박힌 빨간 티셔츠를 3년이 넘도록 대학교 교복으로 입고 다닌건 체 형님이 잘 생긴 이유가 가장 크다.

농활 갔다가 알게 된 총여학생회의 어여쁘신 빨간머리 연사국장에게 점수를 좀 따 보기 위해

그 재미도 없는 체게바라평전을 밑줄 쫙쫙 치면서 두 번이나 읽고 토론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었다.

빨간머리와 단 둘이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러 디비디방에를 간 것 까지는 참 괜찮았으나

안타깝게도 로맨스는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렇게 체 형님은 왔다가 갔다.

시간이 꽤 흐르고 카투사 복무시절, 미군 애들이 나의 체 티셔츠를 보고 괜한 시비를 걸어 온 적이 있다.

“너 그게 누군지나 아냐? 네가 extremer냐?”

빨간머리는 잊은지 오래지만 체 형님은 내 가슴 속에서 뜨겁게 살아있더라.

“누구긴. 체 게바라지. 얘는 아르헨티나 의사출신이고, 쿠바의 혁명가야.

난 extremer는 아니지만 그의 순수한 열정을 존경해.

물론 너네 미국이랑 쿠바가 좋지 못한 관계인건 알지만 여긴 한국이잖냐.

내 돈 주고 사 입은 옷이니까 너네가 존중해야해.

얼굴도 나보단 두 배나 잘 생겼고 너보단 열 배쯤 잘생겼잖아?”

반군 활동 도중의 식사시간, 다른 병사들 보다 접시에 고기 한 점 더 얹어 준 취사병더러,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등을 모욕하느냐고 노발대발 화를 내던 체 형님.

인간의 욕망이 물질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세상, 노동이 유화되는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체 형님.

고작 여자나 꼬시기 위해 혁명 정신을 입에 담는 나를 보며,

자본주의의 상징인 티셔츠 산업의 아이콘이 된 오늘날의 자신을 보며 과연 지하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에게 묻고 싶다.

3. 동네 야구의 세계 제패! 야구

난 몸치다. 그래서 스포츠는 내 인생에서 제껴진 페이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야구가 좋다.

대학교 학과 내 만년 꼴찌팀 야구동아리 백업 2루수.

어쩌다 운 좋게 타석에 들어서면 친구들에게 “야 방망이로 공 못 맞출거 같으면 그냥 몸으로 맞춰!!”

라고 비아냥 섞인 응원이나 들어야 하는 참 안타까운 영혼이라 하겠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눈 감고 휘두른 배트에 공이 와서 맞아주는 일도 가끔씩은 생긴다.

얼굴이 하얘지도록 달려가서 베이스를 밟고 서서, 팀원들을 향해 손을 높이 치켜든다. 그 맛에 야구한다.

쿠바의 야구 시즌이 5월에 끝나버려 그 유명한 리그 경기를 관람하긴 힘들겠지만

언젠가 쿠바 야구를 이끌어갈 꿈나무들이 땀 흘리는 뒷골목에서 그들과 같이 뛰어보고 싶다.

나무 막대기가 배트가 되고 변변한 글러브도 없이 맨손으로 낡은 공을 던지고 받아 가며

쿠바 야구를 느껴보고 싶다.

나와 같이 뛰어 논 그 아이들이 10년 뒤 올림픽에 나올 거란 기대를 안고서.

***** 야구의 나라 쿠바 뒷골목 무리들에 비하면 실력은 일천하지만,

동네 애들이랑 같이 야구 하는 모습을 찍는다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배팅하는 폼은 그럭저럭 괜찮거든요.

5. 클래식 자동차와 오토바이

사실 나는 자동차 박물관 쿠바의 50년대식 클래식 차들이 퍽이나 정겨워 보였다.

다른 외국인들처럼 시보레 50년식을 렌트 해서 다니자는 제안을 내놓았지만,

파트너 누님은 땅 파면 돈이 나오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나보다 나이를 두배는 더 많이 잡순 차를 끌었다가

엄한 곳에서 차가 퍼지면 빼도 박도 못한다는 현실적인 주장도 하시는데..

내 생각에 누님은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오토바이 사이드카에 홀라당 빠진 것 같다.

라이 쿠더가 아들 요아킴을 사이드카 옆 좌석에 태우고 파도가 넘어오는 말레콘 도로를 달리는 장면, 그 장면.

이 아줌마는 분명히 그 장면에 홀라당 빠져서 저렇게 사이드카 사이드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자전거도 못 타면서…

하지만 나이 어린 내게는 선택권이 없다.

몇 년 전 친구 오토바이 빌려 타다가 혼자 넘어져서 병원비 50만원에 오토바이 수리비 100만원을 해먹고,

두 달 동안 깁스를 하고 다니면서 두 번 다시 오토바이를 탔다간 내가 이중현이 아니라고 이를 벅벅 갈긴 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 누나 옆에 태우고 아바나의 방파제, 말레콘 도로를 달려볼란다.

사이드카니까 절대로 넘어질 일은 없을 테고, 끽 해봐야 카리브해의 파도에 홀딱 젖기 밖에 더 할 소냐.

6.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띠 동갑 연상연하 태그팀 흔치 않습니다.

자체만으로도 인간극장 출연 가능합니다.

배우 같은 외모와 모델 같은 몸매는 아니지만 개성이 넘쳐나는 희한한 조합!

그것만으로도 한 재미 합니다.

저희를 잡으셔야 합니다!!!!!!!!!!!!!!!!!!!!!

제길. 3년만에 다시 보니 웃기다기 보다는 처절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