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습작] 詩. 그리고 그대여.
- 작성일
- 11-06-20 03:10
그 짧은 편지는 어디로 가는 걸까.
언제나 편지는 길지 않다. 그녀는 양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지. 단지 사랑한다, 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사실 매번 그 말을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다 쓰고 종이를 접는 순간부터 사랑한다, 라는 말을 조용히 되풀이하곤 하는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풀칠을 너무 많이 해서 우표가 조금 삐뚤어지긴 했지만 나는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사랑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봉투 위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봉투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은행 앞 우체통 앞에 도착하고 나면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랑한다. 고 읆조린다. 어쩌면 이 우체통은 새빨간 쓰레기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많은 오늘이 지나고 또 계절이 바뀌는 동안 어떤 정리 같은 것이 생겨나 있겠지만. 그대.
.
.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감미롭다 느낀 기억이
즐겁다는 말이 가슴을 채워 잊었던 글을 빚게 한 게
또 얼마만 인지
수줍어 얼굴 감춘 별빛
맑은 하늘 누비는 반달의 고즈넉 졸음 진 표정
일상에 찌들어 숙면에 빠진 구름
새색시 걸음으로 얼굴 맞댄 바람 한 점
다 채워도
다 안아도
다 주어도
덤으로 타는 가슴까지
심장에 끓는 피 한 방울까지
고이 접어 날리리니
순수여.
詩여.
사랑이여.
그대여.
여기 맑게 깐 자리에 더불어 하길
.
잊으려
말초신경까지 몰아대도
벗으려
피멍 맺히도록 문질러도
지우려
바닥 드러나게 헤쳐내도
결국 뫼비우스 띠 시작점에 서 있다
다시.
때묻은 펜을 든다
.
시린 눈부심이 앞 막으면
무지개로 찌든
얽힌 머리를 비운다
심장은 숨죽이고
오감의 반응에
신경을 모은다
얄밉도록 푸른 하늘 판에는
그나마 미소짓던 구름도
더위에 지쳐 그림자 속으로 숨고
가슴을 적시던 굴곡 없는 일상은
하얗게 말라
시들지 않을 불씨를 끌어안는다
.
눈가에 어리는 점 하나
감추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쏠림
터뜨리고픈 입술의 주저
한 걸음 가까이 하면 다가서는 따스함
품안 가득 채워도 더 안고 싶은 애틋함
맑은 하늘을 베껴 누비고 싶어도
손끝이 파르르 떨려
한 자 도 들지 못하는데.
.
그대 왜 거기 서 있소
먼발치 던지고 한 걸음 다가서는 발끝엔
주저가 맺히고
그대 어디 가는거요
길목을 서성이며 눈길은 흔들리지만
가야할 곳으로 내닫고
그대 누구인가
여린 가슴 헤집으며
가슴에 박힌 혼을 앗는
詩여
가늠치 못 할 감성과
인식의 창틀에 걸린 무의식에
베어내지 못한 욕망의 줄기
발길 옮길 때마다 곤욕 절은 손끝의 갈등
끝 모를 그대 발길을
오늘도
마른 숨 몰아쉬며 찾는다
.
오늘도 말없이 다가와
마른 가슴에
넘치는 빗방울로
먼지를 잠재웠다
그대를 다시 쓴다
.
맑은 하늘에 비친 눈 속에서
진실 한 올 건지고
잔잔히 타고 드는 눈빛에서
순수의 맑은 샘 퍼 올리고
지려 다문 입술에서
정의 한 주먹 움켜쥐고
따슨 손끝에서
때묻지 않은 감성 가슴에 담아
거니는 발끝에
쉼 없는 정열 펼치리니
너 쫓다 숨 멈추더라도
詩여.
함께 해다오
.
잉크는 말라
보이지 않는 자국만 깊이 새기고
못 채운 종이만 파대더니
마음엔 상처만 남아
긁다 공간에 묻혀 스러져도
잡아도 잠기기 않는 새벽은 창살 잡고 기어오른다
질퍽거리는 밤을 새치로 맞이하면
채우리라 믿었는데
詩여.
넌
손끝에도 미치지 않았구나
.
지난 밤 시끄러웠나
하루하루 숨 죄는 절박한 갈등에서
끓는 몸뚱이 식혀
거추장스런 옷가지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만나려 했는데
쳇바퀴 도는 혼란
한 줄로 펼치려 악몽마저 몰아내었는데
식은 땀방울 계곡으로 흐르고
마른 감성에 뿌리라도 적시고 싶어
옹달샘 물 냄새에 후각 곧 세웠는데
아침바람엔
창문 곁엔
변치 않는 시간이 널리고
무딘 활자냄새만 손끝을 더럽힌다
모든 문 열어 놓으니
같이 가자
눈빛이라도 보자구나.
詩여
.
길을 걷다
너른 그림자 마주쳐 앉아
나린 땀 거두니
바람 스미고
어디서 시작되었나
어디로 가다 예 서있는가
하늘 밖에서 태평양 젤 깊은 데까지
건들지 않은 순백의 얼굴로 다가와
눈 안에서 가슴까지
그대로 가려는가
아님
속세의 때 묻혀야 하나
이정표는 눈감고 거니네
계속 땀방울 대지 적셔야 하나
훔쳐내어 묻고 갈까
이제 답할 때 아닌가
詩여.
.
벗고 싶네
텅 빈 머리마저 말려
하얀 눈에
멍한 얼굴로 살고싶네
걷어내고 싶네
가슴에 박힌 인연의 힘줄 잘라
스러지는 모닥불에 태우려네
그럼 날아가려나 어둠 속으로
머뭇거리는 손 끝
날리는 재 더듬어
다가서지만
뒷걸음에 저리는 오금
떠나려는가
가려거든 깔린 그림자도
거두어 가렴
뜯어낸 상처야
세월 흐르면 아물겠지만
따르다 지친 영혼 빚
갚기는 하려나
한 마디 하렴. 詩여
.
밤을 지새웠다
침묵이 온몸을 감고
어둠과 나눈 대화는
잇댄 정지된 앨범 속 시절로 돌아가
빛 바랜 천진한 웃음과 만나
다잡지 못한 향기와 손잡고
여름날 냇가에 첨벙 뛰어들어
물장구로 하루해를 보내도 좋았던
넉넉한 햇살이 눈에 넘쳐도
아리지 않는
벌거벗은 자궁 속으로 달린다
본능적 유영의 자유와 뵈지 않는 공간에도
우주는 있었다
거기서 보자 詩여.
.
바닥에 펼쳐 놓고
싱싱한 놈 하나 집어들어
속살 그리며 벗긴다
매끈하게 옷 벗고
수줍어 짓는 미소에 답하니
매콤한 향 눈에 박혀
목 메이어 숨 한번 몰아쉬고
더 뜯어내야 하나
손끝은 아리고 손톱은 뭉개져도
들인 시간 버리지 못해
이 악물어도
마지막 옷가지엔 남은 게 없어
허무만 넘치더니
눈 돌리니 뒹굴던 놈들
그림자마저 거두어 흔적도 없이 꼬리 감추고
그새 떠났는가. 詩여
.
이젠
결심해야겠지
그리 목매 기다렸는데
언제나 답하려나
어제도 뜬눈으로 새운 날
빠지는 달덩이 몸매에 깔린
깊은 뜻
아직도 모르지만
이젠
내가 널 버리겠노라
詩여
정수리까지 긁어놓고
어디선가 웃고 있겠지
.
밤새 쏟아지는 갈등
몸으로 받다 지쳐
땀마저도 싫다 떠나고
어둠의 늪은 아직 가슴을 메운다
고래 힘줄로 이은 아픈 연민은
꿈길서도 옆에 서 온 몸 감아
지리도록 긴 시간을 삼키더니
여명이 창문 여니 흔적마저 거두어
바람에 묻혀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 할 요량이었으면 눈길주지 말지
그러고 싶었다면 나타나지나 말지
온전한 마음 아니었다면 열지나 말지
하늘가 흐르는 한 점 바람에 안부나 띄워본다
찾으리라 믿지만
詩여.
그대 방황의 끝에 내 있으니
돌아와주오
.
아침안개 호수가 깔려
질퍽대며 달려 온 길
이슬은 폐부에 스며
맑은 눈 빛
밝은 마음 열어
그득 채우더니
더는 흔들지 않겠노라
심지
정수리에 박는다
뿌연 하늘서 나리는 빗줄기에 묻은 사랑
내 마음이려니
삭히길
너른 가슴에 온 몸 던진다
詩여.
이제 이 밤부터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으리다
.
밤이면 쏟은 눈물
아린 가슴
여린 심성 못 이기는가
선(線)에 맺힌 시간 한 움큼
쌓여 병될까
저미어
안타까워
심장마저 떨려 온 몸 적시면
어둠 피하려 눈감아도
파고드는 애련
천장에 걸린 눈 빛 안으려 내미는 손엔
그리움 넘쳐
절은 원고지 한 줄 메우려는데
영혼은 마르려 하네
詩여.
펜 끝도 말리려 하니
.
세상 눈 어둡다고 약올리고
세 치 혀 나불댄다 면박 주고
엷은 귀 잡아채며 인상쓰며
발바닥 여물지 않다고 내쫓더니
이젠 손가락에 박힌 군살마저도 비웃나
타다 지쳐
기다리다 말라버린
마음까지 가져가려 하니
땡볕에 팽개쳐진 가슴 채우려
詩여.
오늘밤엔 찾아올테지
.
아무도 문 밖을 나선 사람은 없었다
어둠이 깔리면 그림자 속으로
아침이 하품하면 주둥아리 속으로
어디고 선명한 눈동자는
초점 빗대 울지 않았다
너울대는 노을에 잠긴 저녁도
지친 아침을 여는 여명도
할 일없이 본성만을 보이며
흩어진 조각 담으려하지 않았다
지나다 스치다 보면 건지려는
강태공의 시름에
온 신경 낚시 추에 매달고
딴 세상인양 뒷짐 지고 앉아
먼 하늘로 눈길 거둔다
오늘은 힘든가보다
나도 쉬고 싶거든
詩여.
같이 사우나나 가자구나
.
가슴 저며
손 떨려
발은 대지에 접혀
차분히 뒤돌아본다
밀리듯 채근한 시간
종이 학에 심어 날리니
영혼은 숨죽이고
펄떡대는 끈 잡아챈다
어딘가
빛 삼키고 서서
침묵의 강은 흔들리는데
바람 탈까
시린 발끝 호수에 던질까
밀리는 감촉은 삶의 방증일까
흩어지는 가슴은 세상사라 치부하려나
눈을 가리는구나
詩여.
아픈 가슴을 얼마나 이겨야 분 풀리려니
그리도 바쁜가
.
장대비로 쏟아낸 줄기에
네 눈물 도무지 잡히지 않아
넘쳐나는 도랑에
빛 바랜 일기장 종이배로 태우니
갈기갈기 찢겨 바다로 떠났다
만날 약조 건지지 못해
서린 밤 돌고 돌아
체온마저 삭아 가슴에 박힌 그림자로
흔적 쫓으니
부서지는 미련
詩여.
내일 빗속에선 만나지려나
온몸 적시고 싶다
.
무너진 마음 기울 수 없어
창가로 누인 아침 만지니
밤새 흩날리던 책갈피 춤추고
노닐다 흥 식어 자리할 때면
단어는 사전에 박혀
방 채우던 온기 쫓아 가슴에 실으니
맨살 겹다 거리 둔다
한 술 밥에 허기 지피니
삭이기 힘겨워 구역질로 흔들더니
위액까지 담아가니
감기는 눈꺼풀에 묻으려나
휑한 얼굴 덮으려나
박동이 너울로 뿜어대면
이겨진 수표면 깨진 조각들
손끝 에어 선혈 맺히면 혈흔으로 찍어야 하니
詩여.
지지 않는 네 그림자
지친 영혼 물들여 편한 잠 재워주렴
.
문 열리지 않아
지친 눈길에 나리는 무게 벗지 못하고
거친 숨 담기도 어눌해
몸 낮춰 파도에 기댄다
물새소리
비린내
용솟음 너울조차
캘린더 붙박이 허울로 빠져버리고
닿을 듯 밀려나는 기다림
흐느끼는
흔들리는
늘어뜨린 환영(幻影) 귀퉁이 쫓아 만나려 하니
詩여. 그대여.
문 열면 가만히 서 있어라
손 한번 만져보자
.
아침이 다가서면 감아 온 눈빛 그리고
하늘이 열리면 파리한 물보라 빛 방울 잡아채고
바다를 보며 물살에 달아오른 가슴을 적시고
파도를 맞으며 지샌 마음을 세우며
산에 올라 꼭지에 맺힌 땀방울 훔치면
한기가 마른 몸뚱이 적시며 타고 오른다
..
사랑이란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지 못할 미련스런 아픔이란 걸 알면서
점점
중심으로 빠져들어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를 넘나들며
아프게 탐해야하는 아름다움임에도
만나 기뻐해야 하거늘
웃음은 스치고 상처만 남기며
기다림과 정염
감당 못하게 흔들어놓고는
하얀 밤
둥근 달덩이 어루만지며
묻어야하는
내일을 깨워야하는 고통으로 피어
어둠이 허리를 감아 돌 때까지
시린 통증은 머리까지 솟아
깊은 잠 못 이루었다
물보라가 너울 넘어 곁에 오면
난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깊은 입술을 탐하련다
푸른 하늘이 내려 곁에 오면
난
터질 듯한 가슴에 머리 묻고 핥으려한다
흐린 마음 갈고 닦아
詩. 그대.
널 만나러 옷가지 다듬는다
.
가슴 한 구석 비어놓고
기별도 없이 침묵이 이어지면
잊으리라 믿었던 게 탈이었다
다른 세상이 채워져 떼 냈다 미소 뿌린 날
폭풍의 눈 속에 파묻혔다는 망각이 빚어 낸 후회는
풍속 헤아릴 수 없었던 바람몰이 발끝서 스며들어
가슴을 헤집어 놓고
떨치려
벗으려 걷다 들어 선 곳
붉은 빛에 물든 맑은 눈이
유리 창 너머 흘린 웃음으로 물든
자태에 흔들려 빨려들었다
각진 방안에 빛은 없었다
루즈 물든 입술에서
니코틴 밴 유두 훑으며 밑으로 치달아
땀방울 얼굴 지나 온몸을 적시며 탐미한 긴 밤
가장 깊은 곳에 머물러
머리끝은 환희에 부르르 떨며 무너졌다
햇살이 창가에 걸려 실눈으로 옆을 보니
늙은 창녀는 헤픈 몸 열어놓고
풍파에 찌든 화장기 걷힌 얼굴엔
아직 밤이 젖어 있었다
품었단 생각 담으려 돌아보니
詩여
네가 아니었구나..
.
먼지 나부끼는 일상의 짐을 던져놓았다
방구석에 쳐 박힌 그녀는 다소곳 눈을 지려 감고는
탐욕스런 눈 빛 피하지 않고
한줄기 빛에 의지하곤
지우지 못한 화장기 나신(裸身)에 얹으며
한 꺼풀씩 옷을 내리기 시작했다
백옥 닮은
하얀 몸매가 방안을 덮더니
옅은 비음(鼻音) 쏟으며
꿈틀거리는 본능으로 다가와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무중력의 환희가 천장에 닿더니
급전직하
내동댕이쳐진 후회는
으스러지는 고통을 정수리에 박아
아픔마저도 쓸어가 버리고
예가 끝이려니 숨 고르며 돌아보니
아뿔싸!
불붙인 담배 한 모금 빨지 못하고 비벼 끄고
짐 꾸려 방문 여니
하이에나의 굶주린 침이 온몸 적시며 달려들었고
찢기며 뜯겨도 고통은 없었다
이겨진 껍데긴 석쇠에 올려졌고
불덩인 몸을 싸안았지만
펼쳐진 날갠
옥빛 속 날아올랐다
안고 뒹굴었던 육신은 詩도 그대도 아니었구나..
.
숨 쉴 틈도 안 주더니 지쳤는가
한들 바람에 뒷짐 지고 있는지
그림자 잠기려 하는구나
지난밤엔 창문도 못 열었구나
밤이슬에 젖었을 널
망각의 늪에 던졌는지
달콤한 잠에 묻혀
뒤척이지도 못했는데
가는 길 서러워 눈물 보이더니
손마저 굽히려하니
빛살도 안을 수 없게
두터운 옷깃 여미어 내리 깐 가슴엔
잊으리라 믿었던
파내리라 기대었던
부나비의 춤사위 한 줌 스미더니
제친 창가엔
떠나지 못해 서성이는
詩여 그대여
한발 다가오렴.
.
1.
너무 오래 매달렸었나
장마 비 퍼붓듯 출렁이던 인연의 끈들이 힘들다 늘어지며
아로새겼던 잔잔한 마음엔 폭풍우 밀려 뿌리마저 뽑혀
진흙탕 속으로 흔적도 없이 휩쓸려 뒹군다
2.
따르릉
답 없는 수신기에 왜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까
이번에 받으리란 기대는 땡볕에 기우제 지내는 마음이런가
맥없이 손에 달린 전화기는 팽개쳐질까 눈을 감고 있다
3.
맞아
'내 마음 같지 않겠지' 자위하지만 떨칠 수 없는 아쉬움은
번잡하게 흐르는 거리에 묻혀버리고
떼지 못 할 미련덩이만 키워간다
4.
이젠 마음 정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그리 쫓아다녔건만
가슴까지 내주었다 생각했건만
모든 게 홀로 선.
손뼉치지 못 할 허공 가르기에 불과했다
5.
이젠 기다리지 않겠다
조용히 산천초목 찾아 떠나련다
때로 네 생각이 미치면 그림자라도 찾아보리니
너. 내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잊어버리라
6.
詩여.
그대를
가슴에서 도려내련다 그럼 안녕
.
1.
아침은 곁에서 지샌 밤 이야기 보따리 풀어헤치며
별똥별과 달을 만났다며 침튀기며 흥에 겨워있었다
그리 조용했던 때는 없었다며 눈에 생기가 넘쳤다
2.
거리를 질주하던 삶의 숨소리는 늘어진 밤을 걸치고
힘에 겨워 둥지로 파고들고 있다
3.
이겨진 눈에도 회색별은 비추었지만 남의 일이라며 외로운 가로등에 기대
부른 배 풀고 있는 달만 멍하니 바라보며
위장을 쑤시는 알코올을 쏟아야 했다
4.
잠시 맑던 뇌는 공복에 쫓겨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식어버린 밥 한술에 자존심마저 팽개쳐버리고
5.
반기지 않는 잠을 청하려
꺾인 날개 깃털 다듬으려
세월 박힌 옷 벗었다
자유로워야 하거늘
6.
詩여
너무 멀리 날아갔구나
네 마음 담기엔 난 너무도 긴 시간에 눌려있었구나
.
1.
케케묵어
얼굴마저 흉해 잊었던 기억을 꺼낸다
2.
저미는 쓰라림은
알코올로 세상을 안았던 함성으로 피더니
뿜어댄 칙칙한 골방의 니코틴과 어깨동무해
무작정 달렸다
3.
가물거리는 의식
소유는 이별을 고하고
영(靈)과 육(肉)은 따로 놀았다
4.
가슴은 끓었으나
이내 식어버려 맛을 캐지 못했다
머리는 맑았으나
혼란스런 세상에 묻혀버렸다
5.
조각난 시간은 오늘도 짝맞추는데 골몰하지만
지펴 온기 핀
갈아 맑게 선
올곧은 네 마음 그리려니
詩여.
모닥불 붙여주렴
.
몸 뉘일 곳 찾아나서 밤새 마셨다
등 맞대거나
반긴 이 없었지만
계절은 파인 흔적 선명하더니
줄기 지키던 물꼬 타고 돌아
맞잡지 못할 틈 쪼개고
미소 내려준다
쓸쓸에 억눌린 가슴에 흐르는
그림자
감아도 감아지지 않아
메마른 동공은 흔들리고
스쳐도
안아도
밤공기에 밀려 날아간 시간
더듬어 잡은 온기나마 간직하려니
詩여.
뱉어낼 말(言) 한웅큼 내려주렴
.
가슴 아려오는 흔적 살핀다
어디로 갔을까
따가운 열망 피해 숨었나
떠밀리는 세월 피해 업드렸나
머지 않은
가슴 한복판에 솟아나있건만
일상의 부침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가련히 열린 꽃망울은
내내 향기 뿜어내었지만
미처 건지지 못했던 미련함
낙엽이 바람을 타면
흐르는 눈물에 스미려나
애정 어린 눈으로 고운 자태 파헤치면
떠나려 하지 않을까
초조한 심정이 가슴 태운다
..
그것이었구나
계절이 남겨준 선물이었어
그건 사랑이었노라고.
詩여.
내게도 다시 한번 담아주지 않으련
................
언제나 편지는 길지 않다. 그녀는 양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지. 단지 사랑한다, 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사실 매번 그 말을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다 쓰고 종이를 접는 순간부터 사랑한다, 라는 말을 조용히 되풀이하곤 하는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풀칠을 너무 많이 해서 우표가 조금 삐뚤어지긴 했지만 나는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사랑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봉투 위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 봉투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은행 앞 우체통 앞에 도착하고 나면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랑한다. 고 읆조린다. 어쩌면 이 우체통은 새빨간 쓰레기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많은 오늘이 지나고 또 계절이 바뀌는 동안 어떤 정리 같은 것이 생겨나 있겠지만.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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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단어가 감미롭다 느낀 기억이
즐겁다는 말이 가슴을 채워 잊었던 글을 빚게 한 게
또 얼마만 인지
수줍어 얼굴 감춘 별빛
맑은 하늘 누비는 반달의 고즈넉 졸음 진 표정
일상에 찌들어 숙면에 빠진 구름
새색시 걸음으로 얼굴 맞댄 바람 한 점
다 채워도
다 안아도
다 주어도
덤으로 타는 가슴까지
심장에 끓는 피 한 방울까지
고이 접어 날리리니
순수여.
詩여.
사랑이여.
그대여.
여기 맑게 깐 자리에 더불어 하길
.
잊으려
말초신경까지 몰아대도
벗으려
피멍 맺히도록 문질러도
지우려
바닥 드러나게 헤쳐내도
결국 뫼비우스 띠 시작점에 서 있다
다시.
때묻은 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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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눈부심이 앞 막으면
무지개로 찌든
얽힌 머리를 비운다
심장은 숨죽이고
오감의 반응에
신경을 모은다
얄밉도록 푸른 하늘 판에는
그나마 미소짓던 구름도
더위에 지쳐 그림자 속으로 숨고
가슴을 적시던 굴곡 없는 일상은
하얗게 말라
시들지 않을 불씨를 끌어안는다
.
눈가에 어리는 점 하나
감추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쏠림
터뜨리고픈 입술의 주저
한 걸음 가까이 하면 다가서는 따스함
품안 가득 채워도 더 안고 싶은 애틋함
맑은 하늘을 베껴 누비고 싶어도
손끝이 파르르 떨려
한 자 도 들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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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왜 거기 서 있소
먼발치 던지고 한 걸음 다가서는 발끝엔
주저가 맺히고
그대 어디 가는거요
길목을 서성이며 눈길은 흔들리지만
가야할 곳으로 내닫고
그대 누구인가
여린 가슴 헤집으며
가슴에 박힌 혼을 앗는
詩여
가늠치 못 할 감성과
인식의 창틀에 걸린 무의식에
베어내지 못한 욕망의 줄기
발길 옮길 때마다 곤욕 절은 손끝의 갈등
끝 모를 그대 발길을
오늘도
마른 숨 몰아쉬며 찾는다
.
오늘도 말없이 다가와
마른 가슴에
넘치는 빗방울로
먼지를 잠재웠다
그대를 다시 쓴다
.
맑은 하늘에 비친 눈 속에서
진실 한 올 건지고
잔잔히 타고 드는 눈빛에서
순수의 맑은 샘 퍼 올리고
지려 다문 입술에서
정의 한 주먹 움켜쥐고
따슨 손끝에서
때묻지 않은 감성 가슴에 담아
거니는 발끝에
쉼 없는 정열 펼치리니
너 쫓다 숨 멈추더라도
詩여.
함께 해다오
.
잉크는 말라
보이지 않는 자국만 깊이 새기고
못 채운 종이만 파대더니
마음엔 상처만 남아
긁다 공간에 묻혀 스러져도
잡아도 잠기기 않는 새벽은 창살 잡고 기어오른다
질퍽거리는 밤을 새치로 맞이하면
채우리라 믿었는데
詩여.
넌
손끝에도 미치지 않았구나
.
지난 밤 시끄러웠나
하루하루 숨 죄는 절박한 갈등에서
끓는 몸뚱이 식혀
거추장스런 옷가지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만나려 했는데
쳇바퀴 도는 혼란
한 줄로 펼치려 악몽마저 몰아내었는데
식은 땀방울 계곡으로 흐르고
마른 감성에 뿌리라도 적시고 싶어
옹달샘 물 냄새에 후각 곧 세웠는데
아침바람엔
창문 곁엔
변치 않는 시간이 널리고
무딘 활자냄새만 손끝을 더럽힌다
모든 문 열어 놓으니
같이 가자
눈빛이라도 보자구나.
詩여
.
길을 걷다
너른 그림자 마주쳐 앉아
나린 땀 거두니
바람 스미고
어디서 시작되었나
어디로 가다 예 서있는가
하늘 밖에서 태평양 젤 깊은 데까지
건들지 않은 순백의 얼굴로 다가와
눈 안에서 가슴까지
그대로 가려는가
아님
속세의 때 묻혀야 하나
이정표는 눈감고 거니네
계속 땀방울 대지 적셔야 하나
훔쳐내어 묻고 갈까
이제 답할 때 아닌가
詩여.
.
벗고 싶네
텅 빈 머리마저 말려
하얀 눈에
멍한 얼굴로 살고싶네
걷어내고 싶네
가슴에 박힌 인연의 힘줄 잘라
스러지는 모닥불에 태우려네
그럼 날아가려나 어둠 속으로
머뭇거리는 손 끝
날리는 재 더듬어
다가서지만
뒷걸음에 저리는 오금
떠나려는가
가려거든 깔린 그림자도
거두어 가렴
뜯어낸 상처야
세월 흐르면 아물겠지만
따르다 지친 영혼 빚
갚기는 하려나
한 마디 하렴. 詩여
.
밤을 지새웠다
침묵이 온몸을 감고
어둠과 나눈 대화는
잇댄 정지된 앨범 속 시절로 돌아가
빛 바랜 천진한 웃음과 만나
다잡지 못한 향기와 손잡고
여름날 냇가에 첨벙 뛰어들어
물장구로 하루해를 보내도 좋았던
넉넉한 햇살이 눈에 넘쳐도
아리지 않는
벌거벗은 자궁 속으로 달린다
본능적 유영의 자유와 뵈지 않는 공간에도
우주는 있었다
거기서 보자 詩여.
.
바닥에 펼쳐 놓고
싱싱한 놈 하나 집어들어
속살 그리며 벗긴다
매끈하게 옷 벗고
수줍어 짓는 미소에 답하니
매콤한 향 눈에 박혀
목 메이어 숨 한번 몰아쉬고
더 뜯어내야 하나
손끝은 아리고 손톱은 뭉개져도
들인 시간 버리지 못해
이 악물어도
마지막 옷가지엔 남은 게 없어
허무만 넘치더니
눈 돌리니 뒹굴던 놈들
그림자마저 거두어 흔적도 없이 꼬리 감추고
그새 떠났는가. 詩여
.
이젠
결심해야겠지
그리 목매 기다렸는데
언제나 답하려나
어제도 뜬눈으로 새운 날
빠지는 달덩이 몸매에 깔린
깊은 뜻
아직도 모르지만
이젠
내가 널 버리겠노라
詩여
정수리까지 긁어놓고
어디선가 웃고 있겠지
.
밤새 쏟아지는 갈등
몸으로 받다 지쳐
땀마저도 싫다 떠나고
어둠의 늪은 아직 가슴을 메운다
고래 힘줄로 이은 아픈 연민은
꿈길서도 옆에 서 온 몸 감아
지리도록 긴 시간을 삼키더니
여명이 창문 여니 흔적마저 거두어
바람에 묻혀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 할 요량이었으면 눈길주지 말지
그러고 싶었다면 나타나지나 말지
온전한 마음 아니었다면 열지나 말지
하늘가 흐르는 한 점 바람에 안부나 띄워본다
찾으리라 믿지만
詩여.
그대 방황의 끝에 내 있으니
돌아와주오
.
아침안개 호수가 깔려
질퍽대며 달려 온 길
이슬은 폐부에 스며
맑은 눈 빛
밝은 마음 열어
그득 채우더니
더는 흔들지 않겠노라
심지
정수리에 박는다
뿌연 하늘서 나리는 빗줄기에 묻은 사랑
내 마음이려니
삭히길
너른 가슴에 온 몸 던진다
詩여.
이제 이 밤부터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으리다
.
밤이면 쏟은 눈물
아린 가슴
여린 심성 못 이기는가
선(線)에 맺힌 시간 한 움큼
쌓여 병될까
저미어
안타까워
심장마저 떨려 온 몸 적시면
어둠 피하려 눈감아도
파고드는 애련
천장에 걸린 눈 빛 안으려 내미는 손엔
그리움 넘쳐
절은 원고지 한 줄 메우려는데
영혼은 마르려 하네
詩여.
펜 끝도 말리려 하니
.
세상 눈 어둡다고 약올리고
세 치 혀 나불댄다 면박 주고
엷은 귀 잡아채며 인상쓰며
발바닥 여물지 않다고 내쫓더니
이젠 손가락에 박힌 군살마저도 비웃나
타다 지쳐
기다리다 말라버린
마음까지 가져가려 하니
땡볕에 팽개쳐진 가슴 채우려
詩여.
오늘밤엔 찾아올테지
.
아무도 문 밖을 나선 사람은 없었다
어둠이 깔리면 그림자 속으로
아침이 하품하면 주둥아리 속으로
어디고 선명한 눈동자는
초점 빗대 울지 않았다
너울대는 노을에 잠긴 저녁도
지친 아침을 여는 여명도
할 일없이 본성만을 보이며
흩어진 조각 담으려하지 않았다
지나다 스치다 보면 건지려는
강태공의 시름에
온 신경 낚시 추에 매달고
딴 세상인양 뒷짐 지고 앉아
먼 하늘로 눈길 거둔다
오늘은 힘든가보다
나도 쉬고 싶거든
詩여.
같이 사우나나 가자구나
.
가슴 저며
손 떨려
발은 대지에 접혀
차분히 뒤돌아본다
밀리듯 채근한 시간
종이 학에 심어 날리니
영혼은 숨죽이고
펄떡대는 끈 잡아챈다
어딘가
빛 삼키고 서서
침묵의 강은 흔들리는데
바람 탈까
시린 발끝 호수에 던질까
밀리는 감촉은 삶의 방증일까
흩어지는 가슴은 세상사라 치부하려나
눈을 가리는구나
詩여.
아픈 가슴을 얼마나 이겨야 분 풀리려니
그리도 바쁜가
.
장대비로 쏟아낸 줄기에
네 눈물 도무지 잡히지 않아
넘쳐나는 도랑에
빛 바랜 일기장 종이배로 태우니
갈기갈기 찢겨 바다로 떠났다
만날 약조 건지지 못해
서린 밤 돌고 돌아
체온마저 삭아 가슴에 박힌 그림자로
흔적 쫓으니
부서지는 미련
詩여.
내일 빗속에선 만나지려나
온몸 적시고 싶다
.
무너진 마음 기울 수 없어
창가로 누인 아침 만지니
밤새 흩날리던 책갈피 춤추고
노닐다 흥 식어 자리할 때면
단어는 사전에 박혀
방 채우던 온기 쫓아 가슴에 실으니
맨살 겹다 거리 둔다
한 술 밥에 허기 지피니
삭이기 힘겨워 구역질로 흔들더니
위액까지 담아가니
감기는 눈꺼풀에 묻으려나
휑한 얼굴 덮으려나
박동이 너울로 뿜어대면
이겨진 수표면 깨진 조각들
손끝 에어 선혈 맺히면 혈흔으로 찍어야 하니
詩여.
지지 않는 네 그림자
지친 영혼 물들여 편한 잠 재워주렴
.
문 열리지 않아
지친 눈길에 나리는 무게 벗지 못하고
거친 숨 담기도 어눌해
몸 낮춰 파도에 기댄다
물새소리
비린내
용솟음 너울조차
캘린더 붙박이 허울로 빠져버리고
닿을 듯 밀려나는 기다림
흐느끼는
흔들리는
늘어뜨린 환영(幻影) 귀퉁이 쫓아 만나려 하니
詩여. 그대여.
문 열면 가만히 서 있어라
손 한번 만져보자
.
아침이 다가서면 감아 온 눈빛 그리고
하늘이 열리면 파리한 물보라 빛 방울 잡아채고
바다를 보며 물살에 달아오른 가슴을 적시고
파도를 맞으며 지샌 마음을 세우며
산에 올라 꼭지에 맺힌 땀방울 훔치면
한기가 마른 몸뚱이 적시며 타고 오른다
..
사랑이란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지 못할 미련스런 아픔이란 걸 알면서
점점
중심으로 빠져들어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를 넘나들며
아프게 탐해야하는 아름다움임에도
만나 기뻐해야 하거늘
웃음은 스치고 상처만 남기며
기다림과 정염
감당 못하게 흔들어놓고는
하얀 밤
둥근 달덩이 어루만지며
묻어야하는
내일을 깨워야하는 고통으로 피어
어둠이 허리를 감아 돌 때까지
시린 통증은 머리까지 솟아
깊은 잠 못 이루었다
물보라가 너울 넘어 곁에 오면
난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깊은 입술을 탐하련다
푸른 하늘이 내려 곁에 오면
난
터질 듯한 가슴에 머리 묻고 핥으려한다
흐린 마음 갈고 닦아
詩. 그대.
널 만나러 옷가지 다듬는다
.
가슴 한 구석 비어놓고
기별도 없이 침묵이 이어지면
잊으리라 믿었던 게 탈이었다
다른 세상이 채워져 떼 냈다 미소 뿌린 날
폭풍의 눈 속에 파묻혔다는 망각이 빚어 낸 후회는
풍속 헤아릴 수 없었던 바람몰이 발끝서 스며들어
가슴을 헤집어 놓고
떨치려
벗으려 걷다 들어 선 곳
붉은 빛에 물든 맑은 눈이
유리 창 너머 흘린 웃음으로 물든
자태에 흔들려 빨려들었다
각진 방안에 빛은 없었다
루즈 물든 입술에서
니코틴 밴 유두 훑으며 밑으로 치달아
땀방울 얼굴 지나 온몸을 적시며 탐미한 긴 밤
가장 깊은 곳에 머물러
머리끝은 환희에 부르르 떨며 무너졌다
햇살이 창가에 걸려 실눈으로 옆을 보니
늙은 창녀는 헤픈 몸 열어놓고
풍파에 찌든 화장기 걷힌 얼굴엔
아직 밤이 젖어 있었다
품었단 생각 담으려 돌아보니
詩여
네가 아니었구나..
.
먼지 나부끼는 일상의 짐을 던져놓았다
방구석에 쳐 박힌 그녀는 다소곳 눈을 지려 감고는
탐욕스런 눈 빛 피하지 않고
한줄기 빛에 의지하곤
지우지 못한 화장기 나신(裸身)에 얹으며
한 꺼풀씩 옷을 내리기 시작했다
백옥 닮은
하얀 몸매가 방안을 덮더니
옅은 비음(鼻音) 쏟으며
꿈틀거리는 본능으로 다가와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무중력의 환희가 천장에 닿더니
급전직하
내동댕이쳐진 후회는
으스러지는 고통을 정수리에 박아
아픔마저도 쓸어가 버리고
예가 끝이려니 숨 고르며 돌아보니
아뿔싸!
불붙인 담배 한 모금 빨지 못하고 비벼 끄고
짐 꾸려 방문 여니
하이에나의 굶주린 침이 온몸 적시며 달려들었고
찢기며 뜯겨도 고통은 없었다
이겨진 껍데긴 석쇠에 올려졌고
불덩인 몸을 싸안았지만
펼쳐진 날갠
옥빛 속 날아올랐다
안고 뒹굴었던 육신은 詩도 그대도 아니었구나..
.
숨 쉴 틈도 안 주더니 지쳤는가
한들 바람에 뒷짐 지고 있는지
그림자 잠기려 하는구나
지난밤엔 창문도 못 열었구나
밤이슬에 젖었을 널
망각의 늪에 던졌는지
달콤한 잠에 묻혀
뒤척이지도 못했는데
가는 길 서러워 눈물 보이더니
손마저 굽히려하니
빛살도 안을 수 없게
두터운 옷깃 여미어 내리 깐 가슴엔
잊으리라 믿었던
파내리라 기대었던
부나비의 춤사위 한 줌 스미더니
제친 창가엔
떠나지 못해 서성이는
詩여 그대여
한발 다가오렴.
.
1.
너무 오래 매달렸었나
장마 비 퍼붓듯 출렁이던 인연의 끈들이 힘들다 늘어지며
아로새겼던 잔잔한 마음엔 폭풍우 밀려 뿌리마저 뽑혀
진흙탕 속으로 흔적도 없이 휩쓸려 뒹군다
2.
따르릉
답 없는 수신기에 왜 고개를 기울이고 있을까
이번에 받으리란 기대는 땡볕에 기우제 지내는 마음이런가
맥없이 손에 달린 전화기는 팽개쳐질까 눈을 감고 있다
3.
맞아
'내 마음 같지 않겠지' 자위하지만 떨칠 수 없는 아쉬움은
번잡하게 흐르는 거리에 묻혀버리고
떼지 못 할 미련덩이만 키워간다
4.
이젠 마음 정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그리 쫓아다녔건만
가슴까지 내주었다 생각했건만
모든 게 홀로 선.
손뼉치지 못 할 허공 가르기에 불과했다
5.
이젠 기다리지 않겠다
조용히 산천초목 찾아 떠나련다
때로 네 생각이 미치면 그림자라도 찾아보리니
너. 내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잊어버리라
6.
詩여.
그대를
가슴에서 도려내련다 그럼 안녕
.
1.
아침은 곁에서 지샌 밤 이야기 보따리 풀어헤치며
별똥별과 달을 만났다며 침튀기며 흥에 겨워있었다
그리 조용했던 때는 없었다며 눈에 생기가 넘쳤다
2.
거리를 질주하던 삶의 숨소리는 늘어진 밤을 걸치고
힘에 겨워 둥지로 파고들고 있다
3.
이겨진 눈에도 회색별은 비추었지만 남의 일이라며 외로운 가로등에 기대
부른 배 풀고 있는 달만 멍하니 바라보며
위장을 쑤시는 알코올을 쏟아야 했다
4.
잠시 맑던 뇌는 공복에 쫓겨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식어버린 밥 한술에 자존심마저 팽개쳐버리고
5.
반기지 않는 잠을 청하려
꺾인 날개 깃털 다듬으려
세월 박힌 옷 벗었다
자유로워야 하거늘
6.
詩여
너무 멀리 날아갔구나
네 마음 담기엔 난 너무도 긴 시간에 눌려있었구나
.
1.
케케묵어
얼굴마저 흉해 잊었던 기억을 꺼낸다
2.
저미는 쓰라림은
알코올로 세상을 안았던 함성으로 피더니
뿜어댄 칙칙한 골방의 니코틴과 어깨동무해
무작정 달렸다
3.
가물거리는 의식
소유는 이별을 고하고
영(靈)과 육(肉)은 따로 놀았다
4.
가슴은 끓었으나
이내 식어버려 맛을 캐지 못했다
머리는 맑았으나
혼란스런 세상에 묻혀버렸다
5.
조각난 시간은 오늘도 짝맞추는데 골몰하지만
지펴 온기 핀
갈아 맑게 선
올곧은 네 마음 그리려니
詩여.
모닥불 붙여주렴
.
몸 뉘일 곳 찾아나서 밤새 마셨다
등 맞대거나
반긴 이 없었지만
계절은 파인 흔적 선명하더니
줄기 지키던 물꼬 타고 돌아
맞잡지 못할 틈 쪼개고
미소 내려준다
쓸쓸에 억눌린 가슴에 흐르는
그림자
감아도 감아지지 않아
메마른 동공은 흔들리고
스쳐도
안아도
밤공기에 밀려 날아간 시간
더듬어 잡은 온기나마 간직하려니
詩여.
뱉어낼 말(言) 한웅큼 내려주렴
.
가슴 아려오는 흔적 살핀다
어디로 갔을까
따가운 열망 피해 숨었나
떠밀리는 세월 피해 업드렸나
머지 않은
가슴 한복판에 솟아나있건만
일상의 부침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
가련히 열린 꽃망울은
내내 향기 뿜어내었지만
미처 건지지 못했던 미련함
낙엽이 바람을 타면
흐르는 눈물에 스미려나
애정 어린 눈으로 고운 자태 파헤치면
떠나려 하지 않을까
초조한 심정이 가슴 태운다
..
그것이었구나
계절이 남겨준 선물이었어
그건 사랑이었노라고.
詩여.
내게도 다시 한번 담아주지 않으련
................
